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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선 박사의 삶이 깊은 감동으로 다가 옵니다.
이동원 2011-03-04 01:14:02 576

파리 국립도서관에서 외규장각도서들을 기적적으로 찾아내고, 생업도 끊긴 채 298권의 외규장각 고문서 해제(解題)를 완성한 박병선 박사는 보통 사람은 상상할 수 없는 삶을 살았다.



박병선 박사(1926년 생) 1955년 도불(渡佛) 유학 때 프랑스에 가서 병인양요 때 빼앗긴 유물을 꼭 찾아보라는 은사 이병도 교수의 당부를 깊이 새기고 학위*를 마친 뒤 외규장각도서가 소장돼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파리 국립도서관에 직원으로 들어갔다.



 

*1955년 우리나라 민간인 여성 가운데 최초로 프랑스 유학 비자를 받고 홀로

  프랑스로 건너가 소르본대학과 프랑스고등교육원에서 각각 역사학과 종교학

  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1967년부터 13년동안 프랑스국립도서관에

  근무하면서 3000만종이 넘는 장서를 뒤져 '직지' '외규장각' 도서 297권을

  찾아내 주불 한국대사관에 알렸다. 10년 넘게 매일 도서관에서 외규장각

  도서 목차를 베끼고 내용을 요약했다.


틈만 나면 서고에 들어가 먼지 쌓인 책들을 일일이 들춰내며 외규장각 고문서를 찾는 작업에 열중했다.

 

책 먼지로 콧속이 새까맣게 되도록 서고에서 책을 다 훑자 구석에서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는 우리나라의 ‘직지심체요절’이 눈에 띄었다. 구한말 최초의 주한 프랑스공사 ‘콜랭’이 갖고 간 것으로 알려져 있는 ‘직지…’는 당시 학자들 사이에 최초의 금속활자일 수도 있다는 가정만 있었을 뿐 고증되지 못한 채였다.

 

박병선 박사는 인쇄소에서 활자를 가져다 찍어 보고 나무와 흙에 새겨 수백 번이고 찍어 보며 ‘직지‘의 고증을 위해 연구했다. 집에서 가스레인지에 납을 녹이다가 세 번이나 화재가 날 뻔하기도 했다. 목판본은 한 판에 글자를 새겨 찍으면 똑같이 나오지만 활자를 조합해 찍은 금속활자본은 인쇄 글자가 일률적이지 못하고 비뚤어진 글자가 섞여 있게 마련이다.



 1972년 파리에서 열린 세계 동양학자대회에서 박사는 ‘직지’가 ‘구텐베르크’보다 79년이나 앞선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이라는 것을 세계 학자들에게 알렸다. 잉크로 찍은 자국을 확대해 보여주며 조목조목 설명하자 처음엔 믿지 않던 학자들도 박사의 말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세계 인쇄사가 바뀌는 순간이었다



 직지를 고증한 후에도 박병선 박사는 외규장각도서를 찾겠다는 일념은 계속됐고 1978년 어느 날 “파손 서적 창고에 중국 책들이 쌓여 있다” 는 프랑스인 동료의 말을 듣고 ‘베르사이유’ 별관 창고에서 마침내 ‘외규장각의궤’를 찾아낸다.


 ‘외규장각의궤’란 조선시대 왕실과 국가의 주요 행사 내용과 절차들을 세세히 기록해 놓은 문서다.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에서 약탈해 간 뒤 박병선 박사가 파리의 먼지 쌓인 창고에서 찾아내기까지 아무도 이 고문서의 행방을 알 수 없었다.

 

1782 2월 정조(正祖)는 왕실 관련 서적을 보관할 목적으로 강화도에 외규장각(外奎章閣)을 설치했다. 당시 왕립 도서관인 규장각의 부속 도서관 역할을 위해서다.  설치 후 왕실이나 국가 주요행사의 내용을 정리한 의궤(儀軌)를 비롯해 총 1000여 권의 서적을 보관했다. 하지만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강화도를 습격하면서 외규장각에 보관돼 있던 ‘의궤도서’ 191 297권을 불법 약탈해 갔고 나머지는 불에 타 없어졌다. 이 중 31종은 국내에도 없는 유일본으로 그 역사적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기쁨도 잠시, 박사는 이 일로 파리 국립도서관을 그만둬야 했다. 프랑스에서는 배반자로 낙인 찍히고 한국 외교부에서도 반기지 않았다. 외교 관계가 껄끄러우니 제발 가만히 있어 달라고 당부했다.



양쪽에서 비난과 압박을 받고 도서관에서 쫓겨나다시피 했지만 박사는 ‘외규장각의궤’의 내용을 알려야 되겠다는 일념으로 298권에 이르는 고문서와의 투쟁을 시작했다. 공개하지 않으려는 파리도서관 측과 승강이를 벌이며 10년을 하루같이 식사도 거른 채 한 권에 20킬로그램에 달하는 이두문자로 된 고문서 298권의 외규장각 해제를 완성한다.

 ‘외규장각의궤’는 1993년 미테랑 대통령이 우리나라에 한 권을 가져와 일반에 알려졌지만, 팔순을 넘은 나이에도 우리 역사를 찾아내려는 박병선 박사의 노력은 쉬지 않는다. 박병선 박사가 파리를 떠나지 못한 것은 유럽에 남아 있는 우리사료 발굴 때문이다. 평생을 독신으로 건강을 돌보지 않고 살아온 박사는 병상에서도 마무리되지 않은 연구 얘기에 골몰한다. 국가로부터 제대로 된 지원 없이 평생 연금을 쪼개 사료 연구에만 전념해 온 박사의 인욕 없는 삶에 국가 차원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

  

2008 9 연구차 한국으로 돌아왔다가 직장암 4기 선고를 받았으나, 2009 12 7 장암 수술을 받은 뒤 기적적으로 회복하였고, 지금은 프랑스에 머무르고 계시다고 합니다(2010 11월 프랑스로 출국). 아직도 끝내지 못한 작업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래는 한국을 떠나시기전의 인터뷰입니다.

 

질문: 이제 좀 쉬시고 편안히 마무리 하셔야 할텐데, 아직도 해야 할 일들이 많이 남아 있으신가요?(이 질문은, 연로하신 나이와 얼마전 대장암 수술까지 받으셔서 온전치 못한 몸을 가리켜 한 말입니다)

 

박병선 박사님(1926 217일 서울저동에서 출생): 몇년전, 구한 말 한국에 주재했던 프랑스 영사관에서 본국에 보고했던 외교 문서를 낭트 외교부 문서 보관소에서 찾아낸 적이 있습니다. 120상자에 이르는 그 방대한 자료에는 한일합방 전, 독립국가였던 조선으로 건너 왔던 프랑스 외교관이나, 군인, 그 가족들과 관련한 문서들과 언론 기사들이 많았습니다.

 

3.1절에 대해서는 무려 30페이지 분량으로 얼마나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는지. 당시의 한국인들은 물론 상해임시정부조차 모르고 있는 사실들이 상세하게 보고서로 작성되서 3차에 걸쳐 본국으로 보고가 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철저히 조사햇는지 알 수가 없는데, 그걸로 봐서 3.1절 발고도 상당히 많은 역사적 사건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을 것이라 추측됩니다.

 

대략적으로 훑어 본 결과, 그 자료들은 지금까지 일본이나 한반도와 이익관계에 있던 중국이나 러시아 등의 주장과는 상반된 중요한 내용들이 틀림없이 나올 것이라고 봅니다.

 

당시 한반도는, 프랑스의 입장에서는 주도국이 아니었기에 서양의 시각에서 가장 객관적이고 정확한 상황들이 기록되었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 작업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남아 있습니다.

 

 

질문: 그러한 작업을 위해 구체적으로 접근한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박병선 박사님: 낭트 외무부 고문서 보관소에 보관되어 있는 자료 120상자를 복사하는 일만해도 엄청난 일입니다. 그 비용만도 만만치 않게 들겠지만, 얼마 전부터는 복사 서비스도 없어져 대신 직접 스캔을 하거나 사진을 촬영할 수 있도록 허가해 주고 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디지털 가메라로 촬영을 해와서 컴퓨터에 파일로 저장하는 일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 같습니다. 그 후에는 역사적 가치있는 중요 문서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공동으로 번역하는 작업을 시작하면 되니까요.

 

우선 사진 촬영이 급선무인데, 그 정도 분량이면 저와 함께 적어도 몇 사람이 낭트에 내려가 한달 정도 숙박을 하면서 업무시간 내내 촬영을 해야 합니다. 이러한 제반 경비를 제 사비를 털어 마련해야 하는 관계로 수고비를 넉넉히 줄 수도 없는 형편입니다.

 

역사의식을 갖고 있다면 반드시 해야할 일이고, 분명 의식있는 자원 봉사자가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뜻을 같이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꼭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연락처: sunykparis@hanmail.net 손윤기)

 

질문: 촬영은 물론 분류, 번역 작업까지 하면 개인적으로 진행하기엔 너무나 방대한 작업인데, 국가나 관련 단체의 지원을 받을 수는 없을까요?

 

박병선 박사님: 다들 도와주겠다고 말들은 하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진행된 것은 없습니다. 한 독지가나 몇몇 단체에서는 힘 닫는데까지 도와주겠다고 했고, 심지어 영부인을 만났을 때도 지원을 약속 받았는데, 아직까지 아무런 연락조차 없습니다.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은 관계로 일단은 제 사비로나마 디지털 파일 작업을 시작하고 추후 지원을 받게 되면 그 예산으로 분류작업이나 번역작업에 더 체계적으로 가속도가 붙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윤희 : 이렇게 생의 중요한 것,의미있는 것을 일찍 발견한분들을 보면 그분들의 혜안이 ,열정이 부럽씁니다..그곳에 계시니 이집사님도 애국자가 되시는 듯하네요..^^ (03.04 19:13)
혀니 : 이곳에 방송되는 KBS WORLD에서만 뵜었는데.. 이렇게 자세한 내용을 보니 정말 대단한 분이심을 실감합니다.. 진정한 애국자~! (03.04 21:42)
김종철 : 병인 양요 때 프랑스에게 약탈된 외규장각 도서가 영구임대식으로 되돌아온다기사를 읽었지만 박병선박사님 평생 독신으로사시면서 애국 애족의 정신으로 이룬업적 진정 애국자,좋은글 감사. (03.05 11:28)
시누이 :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고..이메일 주소로 연락 한번 해봐야겠습니다. (03.06 21:25)
이동원 : 근데 이 분도 약간의 거품이 있다고 합니다. 가령 먼지에 쌓여 있었다는 것은 약간의 사기(?)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평생을 바치신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03.09 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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